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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모르스 (Samuel Morse, 1791~1872)
: 모르스 부호를 발명한 예술가
Ann Lamont

위대한 창조과학자 : 모르스 부호를 발명한 예술가

사무엘 모르스(Samuel Finley Breese Morse)는 메사츄세츠주의 찰스타운에서, 1791년 4월 27일 수요일에 태어났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이 나타나서, 일반적으로 수용되었던 창조의 사실에 손상을 입히기 약 70년 전의 일이다.

사무엘은 잘 알려진 목사이자 지리학 책의 저자인 제데디야 모르스 박사 (Dr. Jedediah Morse)의 세 아들 중 장남이었다. 부자였던 그 가정은 아들들에게 높은 기대를 가졌다. 그 소년들은 기독교 기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예일 대학에 들어갔다. 예일 대학에서의 학습의 일부로써, 사무엘은 전기의 실현(實現)을 보았는데, 그 단계에서는 전기가 어떤 유용한 목적에도 사용되지 못하였다. 또한, 그는 주름상자(사진기의 초기 형태)를 가지고 실험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름상자가 만들어 낸 영상은 일시적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이 정말로 흥미 있어 한 것은 그림이었으며, 그는 여가시간에 자기의 재능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사무엘의 아버지는, 예술가가 되는 것은 신사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적 재능이 꽃피다

사무엘은 인쇄업과 책 판매의 일을 시작했지만, 그 일을 싫어했다. 그는 여가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데에 보냈다. 그의 재능이 인정받기 시작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마침내 그를 영국에 보내어 미술공부를 시키는 데에 동의하였다. 거기서 사무엘의 재능이 꽃피었으며, 그는 공적인 인정을 얻게 되었다. 그가 성공한 작품으로는 명성있는 조각 대회에서 수상한 '죽어가는 헤르쿨레스'라는 제목의 동상과, 역시 '죽어가는 헤르쿨레스'라는 그림, '주피터의 심판'이라는 그림 등이 있다.

사무엘이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밥벌이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가 그리는 주제에는 제 5대 대통령 제임스 몬로우(James Monroe) 및 프랑스의 유명한 장군 라파이엣트(Lafayette) 등도 있었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하원'이라는 제목의 커다란 그림은 개정중에 있는 미국 하원을 나타낸 것으로써 널리 갈채를 받았다.

모르스의 작품이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입은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는 항상 풍부하게 기부하였다. 그는 전도사를 후원했으며, 목사를 훈련시키는 기관에 헌금했다. 모르스는 그의 시간을 하나님께도 바쳤다. 그의 고향 교회에서, 미국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주일학교를 세웠다. 그가 하는 일 때문에 부인과 아이들로부터 많은 시간을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이 시간들을 동료 기독교인을 독려하거나 주일학교에 대한 착상을 고무시키는 데에 보냈다.

이렇게 고투하기는 하였지만 행복했던 시절에, 사무엘 모르스는 처음으로 과학적 발명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와 동생 시드니(Sidney)는 개선된 물펌프를 발명했으며, 또한 대리석 절단기도 발명했다. 나중에 모르스는 그의 예술적 재능과 과학적 재능을 결합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있을 때 사진술의 새로운 과정을 보았으며, 미국에서는 사진을 촬영한 최초의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상물이 10분 동안 정지상태에 있어야 했다. 이것은 초상화를 찍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모르스는 과학 교수인 존 드레이퍼(John Draper)와 함께 연구하여, 단 1분간의 노출시간만 있으면 되는 화학과정을 개발하였다. 또한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술에 대한 과학과 미술을 가르쳤다.

 

통신 문제

그런데 모르스는 왜 성공적이었던 미술을 중지하고 전신기의 개발에 집중했을까? 모르스가 살던 시기에는 통신이 늦었다. 모르스는 늦은 통신이 야기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문제를 경험하였다. 1811년, 그가 미술학도로서 영국에 도착했을 때, 영국과 미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었다. 영국의 배는 영국의 적인 프랑스로 물건을 운반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배를 공격하였다. 결국에 가서는 영국에서 화해를 하려고 했는데, 비극적으로, 그 메시지가 대서양을 건너가는데 한 달이나 걸렸기 때문에, 미국은 1812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 전쟁은 2년 후에 그와 유사한 혼돈 속에서 끝났다. 평화조약이 체결된 후에, 미국과 영국의 군대는 그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또 다른 커다란 전투를 했었다.

늦은 통신은 모르스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825년에 모르스의 젊은 부인이 커넥티컷주의 뉴헤이븐에서 갑자기 죽었을 때, 그는 워싱턴 D.C.에서 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소식이 그에게 우편으로 도착하는 데에 한 주일이 걸렸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장례식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기적 충격은 한 순간에 전달된다. 모르스는 전기를 통신에 이용할 수 있었다면 그가 겪었던 내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는 제거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전신기와 모르스 부호를 발명하다

모르스는 1832년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단선 회로의 전자기 전신기의 개념을 생각했다. 대학의 과학 교수인 레너드 게일(Leonard Gale)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서, 모르스는 다음 5년 동안을 그의 생각을 실제 작동하는 것으로 만드는 데에 보냈다. 여기서, 알파벳의 문자에 대해 점과 대쉬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모르스 부호이다. 점과 대쉬는 전기 충격의 단부호와 장부호 및 그들 사이의 간격으로써 전송되었다.

그는 사업가에게 전신기의 시범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개인 투자가가 전신기 선의 건설에 재정지원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개인 투자가가 나타나지 않자 그는 1년을 지내며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서 미국 정부에 시범을 보였다. 역시 재정 지원이 없었다. 모르스는 영국과 유럽에서 재정 지원을 얻기 위해 1년을 보냈지만 여전히 실패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대중의 관심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뉴욕 항을 가로질러서 절연된 선을 깔아 놓고, 대중 앞에서 시범을 보이겠다는 것을 신문에서 알렸다. 불행히도, 배의 닻에 그의 선이 걸려서 끊어지게 되자 지원 대신에 조롱을 받았다. 이 11년 동안의 좌절을 겪으면서, 모르스는 주머니가 비고 종종 배를 곯았지만, 그의 눈을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돌리지 않았다. 이 시기 동안에 모르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에게는 신비롭게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보는 가운데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다는 것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만족한다.

1843년에 모르스는 전신기에 재정을 지원해 주도록 미국 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또 다른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성공했다.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당된 예산 범위와 지정된 시간 내에 첫 번째 전신기 선을 워싱턴에서 발티모어까지 성공적으로 가설했다. 1844년 5월 24일 금요일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첫 번째 공식 메시지의 내용은 사무엘 모르스의 오랜 친구의 딸인 젊은 기독교인 숙녀가 택했다. 그녀는 모르스에게 영감을 주고 내내도록 그를 지탱하게 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민수기23:23) 라는 문구를 택했다.

 

모르스, 법정에 서다

전신기에서 성공하자 모르스는 명성을 더 얻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재정적 보상도 얻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많은 파렴치한 사람들이 전신기의 발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신기를 시설하는 데에 대한 권리로써 모르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설치하기를 원했다. 마침내 이들 법적 주장은 미연방 대심원에까지 이르렀다. 그 법정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1837년에는 모르스만이, 대중이 실질적으로 사용하기에 바람직한 가장 완전한 결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모르스의 발명 이전의 전신기는 결코 완전하지도 않았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다.

모르스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도움에 관하여 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르스가 최선의 자료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찾고 얻었으며 그것을 활용했다는 사실은 발명가로서의 그의 권리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공적을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모르스는 죽을 때까지 겸손한 기독교인이었으며, 그의 생애의 업적에 대하여 그것은 그분의 업적이다. 오 주여, 모든 찬양을 우리에게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에 돌립니다 라고 표현했다.

사무엘 모르스는 과학적 지식을 실제에 적용함으로써 통신 혁명을 이룩했다. 그는 과학적 지식과 기독교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 정반대이다. 그는 종교가 없는 교육은 기독교의 간단한 상식적 법칙 대신에 황폐한 이론을 대치시킬 위험이 있다고 믿었다.

 

*참조 : 위대한 창조과학자들 (List of great Creation Scientists)
http://crev.info/?scientists=index

 

출처 : Creation 13(1):42–44, December 1990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3/i1/morse.asp
번역자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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