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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세계를 열었던 레벤후크
(Antony van Leeuwenhoek, 1632-1723)
Headlines

    과학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과학에서 근본이 되는 발견과 과학의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고, 인간 역사의 과정을 바꾸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또한 비전문가가 새로운 기준이 될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것 역시 종종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y van Leeuwenhoek)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레벤후크는 매우 창의적이었고, 주의깊었으며, 정확하고, 그 당시의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으며, 채울수 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호기심은 그가 40세부터 91세로 죽는 날까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 호기심은 그가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의 벌레, 코르크, 직물과 20-30배의 배율로 관찰된 다른 물질들의 그림을 포함한 새 삽화집인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의 사본을 읽었을 때 시작되었다. 레벤후크는 자신의 렌즈를 연마하여 만들고, 그 자신만의 현미경을 만들었다. 기술상의 완벽함은 그 배율을 200배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그는 인류에게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인 미생물의 세계(world of microorganisms)를 열었던 것이다.


Antony van Leeuwenhoek, 1632-1723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에서 태어난 안토니에게는 과학자가 될만한 어떠한 조건이나 기회가 전혀 없었다. 대신에 그는 어려움과 역경을 먼저 알게 되었다. 바구니 제조업자 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대여섯살 때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맥주 양조업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화가이자 지방행정관(bailiff)이었던 사람과 재혼했으나, 안토니의 새아버지는 그가 16살때 다시 세상을 떠났다. 삼촌이 그의 교육을 담당했고, 대학교육은 결코 받아본 적이 없었으며, 그 당시의 과학교육에 사용되던 언어인 라틴어 교육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고, 그의 모국어인 네덜란드어가 그가 아는 유일한 언어였다. 레벤후크는 16살이 되던 해 직물상의 견습생 일을 시작해서, 22살이 되기 전 직물점의 상인이 되었다. 그는 그 당시 비단 상인의 딸이었던 바바라 드메이(Barbara de Mey)와 결혼했다. 그리고 5명의 아이를 가졌는데, 그 중에 네 명은 어릴때 죽었다.

안토니는 1660년도에 시종(chamberlain)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와인의 검사를 위한 조사관이자 검사관이 되었다. 그의 직책과 아마도 얼마의 유산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 그의 유명한 취미생활이 된 것을 추구할 만한 넉넉한 수입이 생겼다. 그의 아내는 1666년 그가 34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5년뒤 칼빈파의 성직자이자 다른 직물상이었던 사람의 딸인 코넬리아 스왈미우스(Cornelia Swalmius)와 결혼했다. 그녀는 어느 정도 안토니의 과학에 대한 탐구를 일깨워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업적들이 그들의 결혼 2년 이내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번째 결혼은 1694년 그녀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23년동안 지속되었다. 그 이후 안토니가 1723년도에 죽기까지, 그의 마지막 딸이 그를 돌보았고, 그래서 그가 두번째로 홀아비가 된 후 29년동안 그의 과학적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안토니가 현미경을 발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복합 확대 렌즈(compound magnifying lenses)는 그가 태어나기 40년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는 그 현미경의 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아마도 그의 직물거래시 조사할 때 사용하던 확대경에 친숙했었을 것이다. 그가 다녀왔던 단 한 번의 런던 여행(두 번째 결혼 중간인 1668년도에)을 통해, 그는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의 인기 있던 새 책 마이크로그라피아에서 소개된 확대경을 통해서 본 그 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자연의 세계에 접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단지 5년 뒤에 활짝 피어난 현미경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레벤후크에게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마 그 책이 그러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그의 두번째 아내 혹은 그의 지적인 친구들이 그랬을까? 레벤후크 자신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그랬을까? 어떻든지 그는 스스로 확대경을 연마하고 완벽한 위치에 고정시킨 뒤 검사시료를 볼 수 있는 곳에 위치시켰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서투른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 후크, 스왐메르담(Swammerdam), 말피기(Malphighi), 혹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들에 비하면 매우 뛰어나서, 19세기까지 그것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었다. (전자현미경은 그 후 250년이 지나서 나왔다.) 그 당시의 복합 현미경은 색수차(chromic aberration)때문에 고전하고 있었고, 20배 이상의 배율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레벤후크는 그의 현미경에 핀머리(pinhead)보다 많이 크지 않는 작은 렌즈를 사용했고, 그의 우수한 시력을 사용하여 270배의 배율과 1.4 micron의 해상도를 얻어냈다. 이제 그는 사람의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은 나뭇잎이나 직물과 같이 잘 알려진 것들을 확대해서 보는데 만족하고 있었다. 레벤후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원했다. 그의 현미경을 통해서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고 있었던 1673년에 한 친구가 그를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와 연결해 주었다. 안토니는 한 친구가 그렸던 벌(bee)의 침과 입, 이(louse), 곰팡이(fungus) 그림을 그곳에 보냈다. 저명한 영국의 과학자들은 처음엔 네덜란드어 밖에 말할 줄 모르는 훈련받지 못한 비전문가의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1676년도에 그는 물에 사는 미생물들을 발견한 것을 묘사하면서, 이들은 너무도 작아서 ”만 개 정도의 이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하나의 거친 모래 입자와 비슷할 것이다” 라고 기술했을 때, 왕립 학회는 그의 보고서가 진짜 관찰된 것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 이유는 특히 로버트 후크 자신이 (그때까지 높은 배율의 현미경을 가지고 있었던) 이 실험을 반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벤후크의 관측이 사실이고 정확한 것으로 밝혀졌을 때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1680년에는 이 훈련받지 못한 비전문가가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후에도 결코 다시 런던을 방문하거나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 네덜란드의 옷감 상인은 50여년동안 영국의 과학자들과 샘플들을 첨부한 수백통의 편지를 보내며 활발한 교류를 했고, 그 중의 몇몇은 현재까지 왕립학회 도서관에 그가 직접 만든 현미경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그가 만든 현미경은 수백대였으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단지 9대 이다.)

레벤후크의 편지는 발견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한 방울의 물에서 발견된 생물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속에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의 움직임은 아주 신속하고, 다양하며, 위, 아래, 원을 그리고 있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나는 몇몇 이 작은 생명체들이 치즈껍데기, 밀가루, 곰팡이, 그리고 비슷한 것에서 발견되는 가장 작은 것보다 수천배 이상으로 작다고 판단한다.... 이 중에서 몇몇은 매우 작아서 수백만 개가 하나의 물방울에 담겨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작은 크기를 비교할 만한 살아있는 생명체를 본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이 이러한 엄청나게 작은 생명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상상할 수 조차 없기에, 이 놀라운 광경에 대해 더욱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말은 그 당시 영국의 과학자들에게는 품위가 없는 것으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그의 이빨 사이에 끼어있던 치태(plaque)를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수많은 작은 생물체들과, 아주 예쁜 움직이는 것들, 가장 큰 종류의 것들이 아주 강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지고, 물고기가 물 속을 헤엄치듯이 물(침)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놀라움으로 보게 된다.... 두번째 종류는 잡아늘인 실같은 것들이다” – 그러나 현미경을 통해 보였던 것들에 대한 안토니의 강한 호기심과 놀라움은 거의 촛불 수준의 조명 하에서, 그의 5cm 가량의 작은 현미경을 계속 들여다볼 수 있게 했던 힘과 인내심을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동기에 대해서 그 자신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오랬동안 해 왔던 내 일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찬사를 얻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보게된 것들에 대한 알고자하는 열망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레벤후크는 처음에 박테리아, 윤충류(rotifers), 그리고 종벌레(Vorticella)와 같은 원생생물(protists)들을 관찰했다. 그는 혈액속의 세포를 관찰했고, 처음으로 정자(sperm)의 물결치는 움직임을 본 사람이었다. 그는 실험 생물학의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의 모델이 되었을 기술적 기능들을 실험하면서, 현미경 렌즈에 가져다 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과 미지의 것들에 대해서 조사했다. 또한 그는 미신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일했다. 독립적으로 일하며, 그 당시 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잘못된 인식들에 대해서 전혀 공유하지 않으면서,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한 좋은 실험적 방법들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신비한 글씨가 불에 탄 종이처럼 보이는 물체에서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에서 온 메세지로 여겼었다. 안토니는 그것이 단지 말라 있는 조류(algae)의 층(sheet)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는 그러한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법의학적 모델(forensic analysis)을 사용했는데, 심지어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과정을 재현해 보이기도 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레벤후크는 그 당시에 보급되어 있던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이슬에서 뱀장어가, 모래에서 조개가, 고기에서 구더기가, 그리고 밀가루에서 바구미가)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의 원리를 비판했다. 그는 개미, 벼룩(fleas), 홍합(mussels), 뱀장어, 그리고 다양한 벌레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완전한 주기를 관찰했다. 잘못된 자연발생설 개념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에 의해서 종말을 맞을 때까지 15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진화론적 철학의 영향에 의해 ‘화학진화(chemical evolution)’라는 새로운 형태의 자연발생설이 또 다시 생겨나기는 했지만).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y van Leeuwenhoek)는 그의 말년에 어느 정도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경이로운 작은 미생물들을 보기 위해서, 그의 작은 가게를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러시아 황제), 영국 국왕 제임스 2세(King James II),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가 있었다. 그는 왕립학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 당시 주름잡던 과학자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명성이나 위치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그가 너무 바쁘거나 약속 없이 찾아오면 왕족에게도 퇴짜를 놓기도 했다. 진실로 그의 정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조사하도록 허락해 주신 자연의 경이로움(wonders of nature)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항해학, 천문학, 수학과 또 다른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그는 ”사람은 어떤 것이든지 성취될 수 있다면 그 생각으로 항상 바쁠 것이다”라고 말했다.

레벤후크에 대한 전기들이 주로 그의 실험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레벤후크의 기독교인으로서의 헌신된 자세에 대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는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확고한 하나님의 창조가 기초를 이루고 있는 네델란드 개혁 교회(Dutch Reformed tradition)에서 태어나 자랐고, 교회는 사람들이 연구를 통해 자연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솜씨를 조사하는 것을 이해하고 격려하였다. 그의 종교관에 대해서 인디애나 대학의 웨스트폴(Richard Westfall)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세례를 받고, 칼빈(Calvist) 교회에 묻혔으며, 그의 두번째 아내는 칼빈주의(Calvinist) 성직자의 딸이었다.” 또한 레벤후크는 분명히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과 같은 미신과 싸웠음이 분명하다. 아미테이즈(Mark Amitage)는 레벤후크가 다음과 같이 말한 구절을 찾아내었다. ”이러한 작은 동물들이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말 기적일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러한 미생물들이 원래 창조되었고, 창조주가 고안한 방법에 의해 증식되고 있음을 믿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레벤후크 시대에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주로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의 전통 아래 주로 청교도(Puritans)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들이 서로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출판물들과 심지어 묘비에서도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자부심과 기쁨을 그들과의 관계에서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벤후크의 글들에서 그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경외함과 놀라움을 가지고 기쁘게 받아들였음을 느낄 수 있다. 믿음의 과학자들(Scientists of Faith, Kregel, 1996)에서 그레이브(Dan Graves)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생명체를 작고 위대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설계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로움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그의 장점은 인내심, 간결함, 굽히지 않음에 있었다. 그는 모든 이론, 심지어 자신의 이론 위에 있는 진실을 사랑했다.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것을 증명했듯이, 그들의 요점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그의 믿음을 나타내는 말들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만, 그의 작업이 강한 기독교적 헌신 이외의 것에 의해서 동기가 부여되었다고 하는 것은 찾을 수 없다. 어떤 경우라도 앞에서 이야기된 바와 같이, 레벤후크의 업적과 기독교적인 세계관 사이에 분명한 일치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레벤후크는 그의 마지막 관찰 내용을 구술해서 왕립학회에 전달한 후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다. 분명히 그의 길고 충만한 삶은 과학적 의문에 대한 열정으로 꽉 차 있었다. 현미경은 그의 죽음 이후 많은 발전을 했다. 과학자들은 이제 수백 배가 더 높은 100,000 배율의 전자현미경을 사용해서 레벤후크가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DNA, 분자모터, 세포의 동력기관 등과 같은 세계를 조사하고 있다. 현미경 아래에 광대한 창조의 수평선이 아직도 미탐사 상태로 남아있다. 혹시 당신은 레벤후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과학적 조사(scientific investigation of nature)가 기쁨의 원천이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그레이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안토니 반 레벤후크의 삶은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대부분은 아마도 우리에게 태양 아래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음을 보여줌에 의해서일 것이다”


*참조 :

.Louis Pasteur’s Views on Creation, Evolution, and the Genesis of Germ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rj/v1/n1/louis-pasteurs-views


.The World’s Greatest Creation Scientists from Y1K to Y2K.

 

.한국창조과학회/자료실/창조론/창조과학자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orderby_1=editdate%20desc&page=1&category=K03

 

출처 : Creation-Evolution Headlines, 2004. 3.
URL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304.htm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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