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창조의 신비
성경과 기독교
노아의 홍수
생명복제와 UFO
천문학
물리학 수학 환경
지질학
화석
진화론
진화론의 주장
창조론
연대문제
압도적인 노아 홍수
의 지질학적 증거들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부정되고 있는 수십
억년의 지구연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만물에 깃든 창조주
의 능력과 신성
진화를 부정하는
살아있는 화석들
진화론의 허구적
증거와 주장
첫 방문자를 위한
창조과학 추천자료
ICR
AiG
Impact Article
CMI
Creation Magazine
Encyclopedia
Technical Journal
CEH
Headlines
CRSQ
Omniology
CSC
Bible.ca
RAE
 
창세기 HOME > 자료실 > 창세기
창세기와 21세기의 대화
임용철

창세기와 현재의 대화, 가능할까?

창세기[1]가 ”신화인가, 아니면 역사적 사실인가”의 문제는 창조과학회의 존립과 직결되는 핵심 가치 중 하나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학회존립의 문제를 넘어서, 기독교의 존립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이유로 창립 이래 지금까지 창세기의 역사성을 수호하고 전파하는데 본 학회는 최선의 힘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류 신학계와 교계에서는 이 사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오히려 유신진화론을 필두로 골격가설, 날-시대 이론, 다중격변론 등 창세기의 기록을 왜곡하는 이론들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잘못된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함으로, 필자는 창조과학회의 일원으로써, 이런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고자 펜을 들게 되었다.

사실 창세기의 기록이 기독교 내에서조차 역사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분명 실제 했던 인류의 역사이며,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있어서, 어떤 접근방식이 보다 효과적일까에 대해 고민하여 보았다. 그 결과 다음 두 가지 과정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일반 역사가들이 어떻게 역사를 정의하는 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면 인류에게 일어난 무수한 사건들 가운데, 어떤 사건이 역사로 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며, 또한 역사와 신화를 구분 짓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과정은 역사가들이 내린 역사의 정의에 비추어, 지금까지 창조과학회에서 창세기가 역사임을 주장해온 근거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창세기의 역사성에 대해 피력해온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아니면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먼저 일반 역사가들이 역사의 정의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란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가들 사이에서 불후의 명저로 평가받는 『역사란 무엇인가』[2]를 저술한 E. H. Carr에 따르면, 이 정의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다.

Carr(카)는 그의 책에서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을 언급한다. 첫 번째는 ”역사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편찬하는 것이라는 해석보다는, 사실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간주하는 역사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란 해석과정을 통해 역사의 사실들을 확정하고 지배하는 역사가의 정신에 의한 주관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Carr에 의하면, 이 두 이론 가운데 어느 하나의 주장만이 옳다고 말할 수 없고, 역사가의 주관적 산물인 ‘해석’과 그의 해석에 따라 선택된 ‘역사적 사실’의 필연적인 상호작용이 역사라는 것이다. 그의 책 1장 말미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란 역사가(historian)와 그의 사실들(his facts)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3]

여기서 Carr가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들’이라 하지 않고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주체가 바로 역사가이며, 특정 사건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역사가의 해석이 필연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역사란 단순한 사실들의 기록을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역사에 대한 Carr의 주장을 ‘성경’에 적용해 보자. 성경은 진정한 역사가이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탄생부터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적 사건(사실)들 가운데, 오직 성경의 기록 목적에 부합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주관적(절대적) 해석에 의해 선택되어 기록된 것이다.[4] 또한, 하나님은 역사의 기록자이신 동시에, 인류역사에 끊임없이 개입(Carr의 말에 따르면 상호작용)하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주관자이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창세기가 역사로 인식되기 위한 첫걸음은 그것을 기록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창조과학회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것이기도 하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다음으로,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Croce(크로체, Benedetto Croce) 역시 '모든 역사는 현대사(혹은 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고 했다.[5[ 이것이 말하는 의미에 대해 Carr의 부연 설명을 들어보자.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에 있다.”[6]

위의 설명을 좀 더 쉽게 풀어보면, 역사는 마치 ‘현재’와 ‘과거’라고 하는 낯선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로 비유할 수 있다. 이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몰랐던 점을 배우게 되며, 대화가 잘 통하고 그 내용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이 서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두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기능과 두 시대 사이에 일어나는 역사의 기능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Carr가 제시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간단명료한 정의를 창세기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견해들에 대입해 보자. 그러면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창세기를 신화나 설화로 보는 견해는, 마치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와 같이 현재와 창세기 사이의 대화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주된 이유는 현재의 주류과학인 진화론적 해석과 주장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를 통해 창세기를 더 깊이 이해한다거나, 혹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창세기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닌 것이다.

반면, 유신진화론 및 오랜 연대를 주장하는 이론들은 현재와 창세기 사이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창세기를 신화로 취급하는 입장보다 그나마 낫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입장 역시 Carr의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를 역사로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신진화론의 주장이 창세기 1장의 창조를 진화론적 해석을 가미한 현대 과학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사실성’에 강조를 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역사란 ‘사실’과 역사가의 ‘해석’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그러므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이론이 창세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신진화론이 문제를 야기시키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유신진화론은 현재의 진화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창세기를 해석하려고만 하는 일방적인 시도를 한다. 결국, 창세기로부터 무엇을 배운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므로, 쌍방간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도 역시 창세기를 역사로 보는 입장이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

 

창세기가 역사인 이유 : 창조과학회의 입장

이제 점검할 사항은 지금까지 창세기가 역사임을 주장해온 창조과학회의 접근방식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는 그 접근방식을 앞서 소개한 역사에 대한 정의와 비교하는 것이다. 필자는 본 학회가 지금까지 창세기가 역사임을 주장하는 데 사용된 내용을 살펴보고 종합한 결과, 그 내용들을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창세기의 역사성을 성경 안에서 찾는 것이었다. 성경은 기록자와 기록된 시대를 초월하여 놀라우리만큼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는 특징을 지닌다. 창세기의 기록은 다른 책들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거나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전혀 지니지 않는다. 더욱이 창세기의 사건들이 실제 일어난 것임을 강력히 지지하는 말씀들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가 역사임을 주장하는 두 번째 범주는, 다양한 학문적 자료들을 통해 진화론의 비과학성을 드러내고,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적 발견들이 오히려 창세기에 기록된 그대로의 창조를 지지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정리하자면, 창조과학회는 ‘성경 그 자체와 과학에 입혀진 진화론적 해석의 제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창세기가 역사라는 점을 강변해 왔다.[7]

하지만, 이러한 접근방식 역시 창세기가 역사임을 강조한다기보다는 창세기의 ‘사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앞에서 역사란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다’는 Carr의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접근방식 또한 창세기가 온전한 역사의 지위를 얻도록 하는 데에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창세기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접근방식을 계속 유지한다면[8] 앞에서 지적한 유신진화론이 갖는 것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9]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여러 이론들의 주장을 압도하거나 허물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가 진정한 역사의 지위를 회복하려면, 이 기록이 사실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이것을 기록한 기록자의 해석과 그 의도를 파악하여 창세기와 현재 사이에 대화를 시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 시대 모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진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창세기를 통해 대화하려는 누군가를 찾고 계시며, 이러한 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창세기는 적어도 그러한 시도를 하는 그 사람에게 역사가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로, 이 문제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섣불리 시도하기 어렵고 두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창세기를 역사라고 믿는 한 성도로서 직무유기라는 죄책감에 용기를 내어 대화를 시도해 본다.


창세기와 현재 사이의 대화-창세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우다.

서로 알지 못하는 낯선 두 사람 사이에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아마도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 만약 두 사람의 관심사가 같거나 유사하다면, 대화가 더욱 깊어지고 둘의 관계도 깊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와 현재 사이에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먼저 창세기(여기서는 1장)가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오래된 역사의 기록을 담고 있는 창세기 1장에는 시공간 속에 처음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의 형성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1장에 기록된 내용 중에는 ‘하나님’이 32차례, 다음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7차례 등장한다. 이 사실로 미루어 창세기 1장을 기록한 역사가의 주요 관심사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며 그 모든 과정과 결과물이 ‘좋았다(Good)’라는 것이다. 이 두 단어 중에 필자가 현재와의 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단어는 하나님에 비해 그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좋았다(Good)’[10]이다. 먼저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Good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그날 지으신 결과물 자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결과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날을 나누어 순차적으로 창조하실 필요 없이 단숨에 모든 것을 만드셨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Good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하루’라는 정해진 시간과, 그 시간 안에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 모두를 포함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11] 이렇게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하루라는 시간,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결과물이 모두 합쳐진 것을 표현한 단어가 Good이라고 할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아직 시공간 속에서 창조되지 않아 어떤 것이 없는 상태의 ‘하루’[12] 역시 Good이라는 점이다. 사실 창조의 6일 과정 대부분은 피조물 중 무언가가 빠져있는 부재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루라는 시간과 그 안에 이루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Good이라고 말씀하셨다. 반대로, 창조의 6일 동안 하루하루 지나면서 전날의 부재 상태가 하나씩 채워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전날보다 ‘더 좋았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Good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기 1장에 등장하고 있는 Good의 정의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Good의 정의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에 필자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Good에 대해 지금까지의 내용과 이 장의 또 다른 핵심어인 ‘하나님’으로부터, Good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려보았다. Good이란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 내에 하나님의 열심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과 그 결과물’이다.[13]

개인적으로, 창세기 1장의 내용을 근거로 내린 Good에 대한 정의가 창세기와 현재 대화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음과 같은 하루를 살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계신 것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목적하신 바가 하나님의 정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열심과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과 그 결과’가 실현되는 삶을 말한다. 이 하루가 21세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하루’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Good의 정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필자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던 말씀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바울의 고백이 갖는 의미에 대해 독자 여러분도 묵상하여 보길 권한다.


현재에 비추어 창세기를 배우다.

앞서 창세기 1장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보고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제 현재를 통해 창세기를 더 깊이 이해해보도록 하자. 대화의 시작은 역시 21세기 현재를 대표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찾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 단어에 대해 힌트를 드리면, Good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듯이, 세상 나라의 시작이 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시점부터 지금까지 세상 나라14)를 대표해온 단어로, 세상 나라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Good의 정반대 개념으로 등장한 ‘악(Evil)’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치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운 껍질로 갈아입듯, Evil의 사전적 의미와 발음이 완전히 바뀐 그런 단어이다. 아마 이 단어가 제시되는 순간, 독자 여러분 가운데 의아해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단어의 정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Better)’이다. 이제 왜 Better가 현재의 세상(나라)을 대표하는 단어이며, Evil과 같은 뜻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Better를 통해 어떻게 창세기를 더 깊이 알 수 있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먼저, 필자가 현재를 대표하는 단어로 Better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독자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Better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Better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자신, 그리고 가족의 삶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아마도 자녀들은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일 것이다. 부모세대는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조직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늘 Better가 되었다고 내일 Better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 대부분은 Better가 되기 위해 벌이는 경쟁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이런 이유에서 Better는 현재를 대표하며, 생존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동시에, 겉보기에는 ‘더 좋은’의 뜻이 있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삶을 피폐함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Evil이다.

이제 현시대를 대표하는 Better라는 단어를 통해 창세기의 한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해보도록 하자.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후(Good의 상태가 깨어진 후), 그들에게 일어난 여러 변화가 기록되어 있다. 제일 처음 나타난 변화는 자신들이 벌거벗었으며, 그 상태가 부끄러운 것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7절).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8절, 10절)이 엄습했으며, 서로에 대한 원망과 책임의 전가(12절, 13절)로 관계가 깨어졌고, 해산의 고통(16절)과 수고함(17절), 그리고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쫓겨남(23절)과 죽음(19절)이었다. 이러한 변화들과 현재 Better가 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으로 생긴 개인과 사회 문제들을 한번 떠올려 보자. 놀랄 만큼 흡사하지 않은가? 이 세상에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난 이 변화의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존재할까? 솔직히 말하면, 이 변화 중 절반 이상이 필자의 삶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불순종의 결과와 21세기 경쟁사회에서 Better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 Better의 정체는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Evil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창세기의 Evil이 곧 현시대의 Better인 것이다. 이 관점으로 창세기 3장을 재해석하면,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의 본질은 결국 하나님을 경쟁상대로 본 것이며, 그 열매를 먹는 순간,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경쟁사회에서 나타나는 불안과 고통 등, 앞에서 나열한 문제점들이 그들에게 찾아온 것이다.

끝으로, Better에 대한 정의를 내려 봄으로써 지금까지의 주장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단어의 정의를 내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Good의 정의에서 ‘하나님’ 대신 ‘내’가 들어가면 된다. Better란 ‘내가 목적한 바가[15] 내가 정한 시간 내에 나의 열심과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과 그 결과’이다. 그러므로 Better의 또 다른 표현은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다. 현재를 대표하는 단어 Better를 통해 창세기 3장의 범죄 사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Good과 Better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역사를 공부한 전공자도 아니고, 신학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닌, 평신도로 글을 쓰다 보니, 역사에 대한 짧은 지식과 인용에 의존해 창세기를 역사로 바라보고자 하는 필자의 시도에 여러 실수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Carr가 말한 ‘현재와 과거의 대화’는 이런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는 철퇴를 내릴지도 모른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글을 써 내려 가는 내내 필자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고 온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필자 스스로가 21세기를 사는 범죄한 아담임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성도의 목적이 경쟁에서 이겨 내가 보기에 좋은 하루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된 그 하루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하루를 사는 것임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주
1. 여기서의 창세기는 주로 논란이 되는 1장부터 11장까지를 지칭함.
2.『역사란 무엇인가』 Edward Hallett Carr, 까치.
3. 같은 책, 46쪽.
4. 참고로 E. H. Carr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물론 초월자의 존재나 그의 역사개입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같은 책, 71쪽과 105쪽 참고)
5. 같은 책, 34쪽.
6. 같은 책, 96쪽.
7. 이 주장은 학회 전체의 입장이 아닌, 필자 개인의 소견임을 독자 여러분께 밝힌다.
8. 기존의 시도에 오류가 있다거나 잘못이 있어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밝혀둔다.
9. 창세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거나 두 시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점.
10. 글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어 ‘좋았다’라는 표현 보다는 ‘Good’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Good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후 언급될 ‘Better’와 ‘Evil’ 등의 단어도 같은 이유에서 영문으로 표기하였다.
11. 이미 이러한 주장이 있었다면 필자의 무지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12. 예를 들어, 첫째 날에는 동물이나 식물, 해와 달과 별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13. 이 내용 역시 학계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면, 필자의 무지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14. 여기서의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분의 통치 대신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15. 예를 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

 

출처 : 창조188호

관련 자료 링크:

1. 모세를 찾아서 1 (Searching for Moses)
2. 모세를 찾아서 2 (Searching for Moses)
3.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 대한 기원 :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있는 성경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 : An Ancient pictogram script points to the Bible)
4. 어떻게 아담은 단 하루 만에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How could Adam have named all the animals in a single day?)
5. 태양이 4일째까지 창조되지 않았다면, 창세기 1장의 날들은 문자 그대로의 하루인가? (How could the days of Genesis 1 be literal if the Sun wasn’t created until the fourth day?)
6. 고기를 먹지 않는 사자 : 육식동물도 채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 (The lion that wouldn't eat meat)
7. 요나와 큰 물고기 (Jonah and the great fish)
8. 애굽의 열 가지 재앙 : 기적인가, 자연현상인가? (The ten plagues of Egypt : Miracles or 'Mother Nature')
9.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
10. 에서의 아내들 (Esau’s Wives) : 성경의 오류라는 지적에 대한 반론
11. 고대문명들과 현대인 : 고대인의 전지, 계산기, 점화전 (Ancient civilizations and modern man)
12.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Should Genesis be taken literally?)
13. 회의론자들의 도전 : 사랑의 하나님은 왜 킬러 해파리를 창조하셨는가? (Skeptics challenge : a ‘God of love’ created a killer jellyfish?)
14.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 순서에 모순이 있는가? (Genesis contradictions?)
15. 성경이 박쥐를 새라고 지칭한 것은 오류인가? (Does the Bible Wrongly Call the Bat a Bird?)
16. 성경을 죽기까지 사랑하기 (Loving the Bible to death)
17.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Timing is everything : A talk with field archaeologist David Down)
18. 성경은 원주율을 3.0 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 열왕기상 7 장의 용기 둘레에 관한 진실 (Does the Bible say pi equals 3.0?)
19. 이 성경 구절들은 서로 모순인가? : 솔로몬의 병거 수 등에 관한 성서의 기록은 오류인가? (Contradictions in the Bible?)
20. 성경의 기록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는가? (Did Bible writers believe the earth was flat?)
21. 곤충의 다리 숫자에 관한 성경 기록은 오류인가? (Four Legs Good, Six Legs Bad : An Entomological Error?)
22.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False History—'out with David and Solomon!')
23. 모세는 창세기를 정말로 썼는가? : 성경을 훼손하고 있는 사기적인 문서가설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24. 일각수(유니콘) : 성경은 상상의 동물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The unicorn : The bible does not refer to fantasy animals)
25. 창세기와 잃어버린 점토판들 (Genesis and the Lost Tablets)
26.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The walls of Jericho)
27. 중국 삼성퇴의 청동나무 : 창세기를 묘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 (The Bronze Tree of Sangxingdui : the oldest man-made Genesis artefact?)
28. 성경은 오류로 가득한가? (I'snt the Bible Full of Errors?)
29. 왕비 이세벨의 고대 인장이 발견되었다. (Ancient Seal Belonged To Queen Jezebel)
30. 느헤미야의 성벽이 발견되었다. (Nehemiah’s Wall Found) 
31. 성경 속 이름의 인장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 느헤미야에 기록된 데마의 인장은 성경의 고고학적 정확성을 입증하였다. (Bible Name Found on Jerusalem Artifact)
32. 언어의 혼잡에 관한 전 세계의 전설들 (Tongue-Twisting Tales: One Language, Many Legends)
33. 하나님은 일부다처를 묵인하셨는가? (Contradictions: A Man of Many Wives Does God condone polygamy?)
34. 스바 여왕 : 솔로몬은 이집트 파라오의 방문을 받았는가? (The Queen of Sheba: was Solomon visited by an Egyptian pharaoh?)
35.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신뢰성을 입증하고 있다. (In what ways have the discoveries of archaeology verified the reliability of the Bible?)
36. 이집트 왕 시삭에 대한 어떤 증거가 발견된 적이 있는가? (What evidence has been found of the Egyptian king, Shishak?)
37. 블레셋 신전을 무너뜨린 삼손 이야기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Does archaeology shed any light on the story of Samson pulling down a Philistine temple?)
38. 누가복음 2장의 호적은 언제 시행됐는가? : 예수님 탄생 시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오류인가? (When did the Luke 2 census occur?)
39. 예언자 발람의 존재를 증명할 어떤 고고학적 증거가 있는가? (Is there any evidence to prove the existence of the prophet, Balaam?)
40.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되었다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Is there any evidence for the Biblical story of Sodom and Gomorrah's destruction by fire and brimstone (sulfur)?)
41. 성경 밖의 기록에서 성경 사건들에 대한 어떤 확증이 있는가? (Is there any confirmation of Biblical events from written sources outside the Bible?)
42. 아르박삿의 아들은 누구인가? : 가이난, 셀라? (Who was Arphaxad’s son: Cainan or Shelah?)
43. 이새(다윗 왕의 아버지)는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How Many Sons Did Jesse (Father of King David) Have?)
44.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의 모순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If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how can you explain the contradictions of the Bible?)
45. 겨자씨는 모든 씨들 중에 가장 작은가? (Is the mustard seed the smallest of seeds?)
46. 성경은 라합의 거짓말을 칭찬하고 있는가? (Contradictions : A Righteous Lie? Why was Rahab praised for lying in James 2:25 when lying is forbidden in the Ten Commandments?)
47. 아벨은 양을 제물로 드렸으므로, 육식을 하고 있었는가? (Contradictions: Meat of the Matter. Was Abel eating meat soon after the curse when he wasn’t supposed to be (Genesis 1:29), since he kept the flocks and sacrificed an animal in Genesis 4:2–4?)
48. 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즉시 죽지 않았는가? (Contradictions : Time of Death. Why didn’t Adam and Eve die the moment they ate as Genesis 2:17 implies?)
49. 사랑의 하나님은 왜 여리고성 사람들의 진멸을 명하셨는가? (Contradictions : Slaughter at Jericho Could the loving God of the New Testament order the complete destruction of the inhabitants of Jericho found in the Old Testament?)
50.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Contradictions: Two Ages at Once Just how old was Ahaziah anyway?)
51. ‘충만하라’ 인가, ‘다시 충만하라’ 인가? (Contradictions: Full of Meaning Replenish or fill?)
52.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난 날은? : 예레미야 52:31과 열왕기하 25:27의 불일치는 성경의 오류인가? (Contradictions : Get out of Jail Twice)
53. 아르박삿을 낳을 때의 셈의 나이에 대한 성경 기록은 오류인가? (Contradictions : My Three Sons. Were Noah’s sons born when he was 500 as Genesis 5:32 says or not as stated in Genesis 7:6 and Genesis 11:10?)
54.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팡이를 가지지 말아야 했는가? (Contradictions: A Staff or Not Did Jesus tell His disciples to take a staff?)
55.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이라는 구절과 서로 모순되는가? (Contradictions : Face to Face)
56. 예수님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서로 다른 이유는? (Contradictions : What’s in a Father’s Name?)
57.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기간은 밤낮 사흘이 될 수 없는가? (Contradictions : Three Days and Nights)
58. 신명기의 마지막 장에는 모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세는 그 책의 저자가 될 수 없는 것인가? (Contradictions : Dead Man Writing)
59. 마태는 스가랴의 예언을 예레미야의 것으로 잘못 인용하였는가? : 성경의 오류로 자주 주장되는 구절에 대한 반론. (Contradictions : Mixed Prophets)
60. 가롯 유다의 죽음에 관한 성경 기록은 오류인가? (Contradictions: How Did Judas Die?)
61. 마태는 예수님 족보의 대 수를 잘못 계산하였는가? (Contradictions : Problems with Basic Math? Was Matthew incapable of basic math in his genealogy?)
62. 가장 오래된 히브리 문자가 해독됐다. :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 (Oldest Hebrew Text Deciphered)
63. 달은 빛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 창 1:15절은 성경의 오류인가? (Contradictions : By the Light of the Moon : Does Genesis 1:15 say that the moon emits its own light?)
64. 성경의 근친 간의 결혼 금지는 모순인가? (Contradictions : Too Close for Comfort)
65. 성경에 나타난 지진의 역사
66. 마태복음 족보의 선택적 기록 분석
67. 유태인들에 대한 유전자 분석은 창세기를 확증한다. (Genetics Analysis of Jews Confirms Genesis)
68. 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History and pseudo-history)
69.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제례 예식의 증거. (Evidence of Cultic Activity in Judah Discovered at Khirbet Qeiyafa)
70. 야고보의 유골함은 진품이었다. ('James...Brother of Jesus' Ossuary Is Rock Solid)
71. 베들레헴이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Artifact Confirms Ancient Bethlehem)
72. 제1성전 시대의 저수조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Jerusalem Cistern Found from First Temple Era)
73. 아프리카인의 유전체 분석은 성경적 역사와 일치한다. (African Populations Fit Biblical History)
74. 하나님은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까?
75. 솔로몬의 것으로 확증된 그의 구리 광산. (Solomon Corroborated: It’s His Copper Mine)
76. 구레뇨의 인구조사 누가가 잘못 알았을까? (The Census of Quirinius : Did Luke get it wrong?)
77. 창세기의 낙타는 성경의 오류인가? (Genesis Camels : Biblical Error?)
78. 아담은 정말 930년을 살았는가? : 사람 수명의 감소곡선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Did Adam Really Live 930 Years?)
79. 여호수아의 아이 성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 : 또 다시 확인된 성경 기록의 정확성. (Getting Archaeology Right at Ai)
80. 성경 역사를 확증해주고 있는 고대 앗수르 유물. 대영박물관에 있는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Monuments from Ancient Assyria confirm biblical history. Archaeological evidence from the British Museum)
81. 고대 이집트는 창세기가 실제 역사임을 확증하고 있다. (Ancient Egypt confirms: Genesis is history)
82. 성경 족보에 간격이 있는가? (Are there gaps in the biblical genealogies?)
83.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이 개봉되었다. (Encore Presentation of ‘Patterns of Evidence: Exodus’)
84. 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Biblical Name Found on Pottery)
85. 욥기 38장에 기록된 ‘바다의 샘’이 확인되었다. (Scientists Describe Job's 'Springs of the Sea')
86. 욥기 41장의 리워야단은 어떤 동물일까? (Tracking Down Leviathan)
87. 성경에서 어린 양과 창세기의 역사성 (The Lamb—and Genesis history—in Scripture)
88. 새로운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는 노아를 확증하고 있다 (New DNA Study Confirms Noah)
89.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는 사기로 확인됐다. (Fake ‘Gospel’ Manuscript Exposed)
90. 여호수아서의 하솔에 관한 기록은 정확했다. (Joshua Was Right about Hazor)
91. 리워야단의 몸통 갑옷의 비밀 (The secret of Leviathan’s body-armour?)
92. 창세기와 욥기에 기록된 기후와 일치되는 고고학적 발굴 (Archaeology Confirms Genesis, Job Climate)
93. 팀나의 구리 광산은 솔로몬 왕국의 부강함을 보여준다. (Copper Mine at Timna Shows Solomon’s Power)
94. 성경은 누가 썼는가? : 사해사본과 엔게디의 불에 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Who Wrote the Bible?)
95. 창세기는 역사다! (Genesis is history!)
96. 가나안 인의 DNA 분석은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했다. (Canaanite DNA disproves the Bible? Or, Canaanite DNA disproves media’s ability to read the Bible)
 
 
3억 년 전의 현대적인 딱정벌레의 발견으로 진화론자들은 당황하고 ...
고생물학자가 진화론의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Paleonto...
돌연변이 : 진화의 원료? (Mut...
하나의 특별한 우주 : 그 개념...
전 지구적 대홍수, 격변적 판구...
“화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본 ...
우리는 우주의 어디에 위치하는가...
양자화 된 적색편이 값은 우리...
양자화 된 적색편이 값은 우리...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 ...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아담과 이브의 혈액형은? (It's...
진화론을 비판하는 3,000 명의 ...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
생물의 진화적 기원이 불가능한 ...
다이아몬드 내의 방사성탄소는 수...

과학실험 큐티3
김형기 저

과학실험 큐티2
김형기 저

종교가 되어버린 진화라는 상상
정재훈 저

과학실험 큐티3
김형기 저

빅뱅과 5차원 우주창조론
권진혁 저

영화 속 진화론 바로잡기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 저